최면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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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에 대한 오해와 편견


사람들은 “최면”하면 잠들게 해서 의식을 잃게 한 다음 자신을 마음대로 조정한다고 생각해서 마치 마술이나 마법과 같은 신비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최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신비스러운 모습만을 보아 왔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와 편견이다.

최면에 이렇게 신비한 초능력 같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온 것에는 몇 가지 부정적인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있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 전의 고대 이집트
시대에 쓰인 “에베르스 파피루스”라는 의학서에 “잠의 사원”이란 신성한 장소에서 주술사, 샤먼, 치료사, 승려들이 주문을 외우면 금방 병이 낫게 된다는 초현실적인 설명이 들어가 있다. 이 잠의 사원은 현대로 치면 최면의학연구소 같은 곳이지만, 명백히 다른 점이 있다면 최면에 대해 올바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으로부터 대단한 능력을 부여 받았거나 또는 신의 힘을 빌리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최면에 대한 올바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최면상태에서의 모든 일을 “자신의 특별한 능력”과 “신의 신비한 힘”이 만들어 낸 기적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설명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최면의 과학적인 면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힘에 의해 기적이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최면을 이렇게 오해하는 데에는 “최면술”이라는 용어 탓이기도 하다.
본래 (술; )이란 뜻은 (꾀 술)로써 마술 또는 요술과 같이 꾀를 부려 사람의 눈을 속이는 기술로 혼동해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국어로 ”최면“이 아닌 ”최면술“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술 또는 요술과 혼동되어 사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최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오해가 영어의 “HYPNOSIS"라는 단어를 누군가가 ”최면술“이라고 번역한데서 잘못이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영어 단어는 ”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HYPNOS)에서 유래된 것인데, 영국의 내과의사인 James Braid(1795~1860)가 Hypnos에서 Hypnosis라는 파생어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최면”이 아닌 “최면술”로 술자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술 또는
요술처럼 혼동되어 사용이 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느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최면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최면술”은 “최면”으로, “최면을 건다.”라는 말은 마치
마술, 요술에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므로 “최면으로 유도한다.”라는 말로, “최면에 걸린다.”는 “최면(상태)으로 들어간다.”라는 말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면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 문제들을 살펴보면?

1.최면상태에서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최면상태에서는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오해이다.
최면상태에서도 의식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
인간의 보호본능은 어떤 상황에서든 반사적으로 나타나는데, 최면상태에서도 마찬가지로 피험자에게 불리한 암시를 주면 무의식적인 방어기제가 작용하여 자신이 바라지 않는 행위, 즉, 비도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말을 하게 되면 거부를 하거나 반항을 하면서 최면상태에서 깨어나 버리게 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암시를 강제로 주입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피험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숨은 능력을 일깨워 줄뿐이다.
최면은 긍정적으로 행해질 때에 한하여 그 무한한 위력과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2.최면 중에 잠이 들거나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할까하는 걱정?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코를 골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잠을 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변형된 의식(최면)상태”에 있을 뿐이다.
최면상태에서는 매우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에 있게 된다.
물론 이때 잠재의식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안정되고 아늑한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 상태는 수면상태와도 다르고 각성상태와도 다르며,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깊은 최면상태라 할지라도 각성암시에 의해 반드시 깨어날 수 있다.

3.숨겨진 비밀을 말하면 어떡하나?
최면상태에서도 의식은 있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 판단 기준에 의해 의식을 통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 결코 최면을 유도한 최면가가 아니다. 따라서 깨어있을 때와 같이 자신의 사생활이나 숨기고 싶은 비밀은 얼마든지 말하지 않을 수 있고, 진실하지 않은 경우나 자신에게 불리한 경우 최면상태에서도 거짓을 말할 수 있다.
잠재의식에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가 숨겨져 있다.

*이처럼 최면은 절대 위험하지 않다. 최면상태에서도 의식은 있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한 최면에 대해서 설명을 듣거나 최면을 경험하게 된다면 자신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스스로의 최면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삶이다.
모든 이들의 삶과 인생은 꿈과 같고 환상 속에 빠져있는 최면의 세계이다.
깨달음을 이룬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당신이 빠져있는 그 실체 없는 고통과 환상의 최면에서 이제 그만 깨어나라고......”


*최면상태.

최면상태란 “편안하게 이완된 상태에서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몸과 마음이 최고로 편안하게 이완된 잠들기 직전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눈을 감고 있어 잠들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이다.
의식이 있기 때문에 질문의 내용을 이해하고, 대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잠이 들게 되면 의식이 없어지고 무의식 상태가 된다.
그러나 잠들기 직전의 상태를 연장하면서 충분한 이완상태를 경험하되, 잠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무의식상태를 동시에 경험하면서 의식은 깨어있는 상태가 바로 최면상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최면은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이 공존하는 독특한 상태인 것이다.
최면상태에서는 비교, 분석, 판단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의식의 영역은 작아지고, 반면 무의식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암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수면과 최면의 다른 점은, 수면은 잠을 잔다. / 의식이 고립되어 있다.(의식이 없다.) 최면은 잠을 자지 않는다. / 의식이 있다.


*최면의 효과.

*최면상태에서는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스트레스가 감소하여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가 된다.
트랜스(trance)상태는 마음을 고요하고 편안하고, 안정되게 만들어 준다. 이 트랜스(trance)상태에서는 인류 최후의 백신이라는 면역력(자연치유력)이 강력하게 증강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최면상태에서는 이완을 통해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면서, 스트레스가 감소하여 심리적인 면과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
이때에는 우리 인체의 면역기능이 활발해지면서 육체적인 건강 또한 좋아지게 된다.

이완이란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말한다.
의학적인 의미의 이완은 자율신경의 활동이 감소한 상태를 말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교감 신경의 활동이 감소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연최면상태, 또는 유사최면상태.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최면상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자신도 모르게 어떤 것에 푹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했거나, 주위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거나, 화면을 통해 슬픔이나 즐거움을 느꼈다는 것은 이미 최면상태로 접어들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떠한 생각이나 하나의 대상, 감각적인 자극에 몰입하게 되면 지각에 이상이나 변화를 일으키는 “고도로 집중된 상태에서의 변형된 의식상태”가 나타난다. 이때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미처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런 현상을 “자연최면상태” 또는 “유사최면상태”라고 한다.

이처럼 자신도 모르게 들어갔다가 자신도 모르게 깨어나는 “자연최면상태” 또는 “유사최면상태”에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최면에서처럼 스스로가 최면상태를 유지해서 잠재의식에 긍정적인 암시를 주고 마음의 병을 고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예; TV나 영화에 몰입해 있을 때는 주변의 모든 상황에 대한 인식이 일시 중지되고 TV나 영화에만 몰입해 있는 상태이다. 즉 주변인식은 감소되어 있고, TV나 영화에 대한 초점인식이 강해져 있는 상태이다. 다시 말해 영화에 집중해 있는 것이다. 한 곳에 고도로 몰입된 상태, 자연적인 최면상태이다. 드라마 작가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대본을 쓰고, 연기자가 연기를 하고, 실제 일어난 일이나 실제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몰입되어 있으면 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몰입을 하게 되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예;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시간이 가는 것을 몰랐거나, 방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몰랐을 때......


*잠재의식은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의 모든 삶을 지배하며,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긍정과 부정을 결정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암시와 잠재의식.

최면에서의 암시는 어느 특정한 반응을 기대하는 자극의 일종이며, 심리적인 변화를 목표로 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볼드윈은 “사람이 암시를 받으면, 머리 속에 암시내용과 같은 관념이 형성되어 사상의 일부가 되며 결국 행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암시는 관념에 영향을 미치고, 관념은 행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최면과 피암시성을 통해 암시의 효과와 위력이 나타나게 된다.
암시란 하나의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믿거나 그대로 행동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언어(말)를 통해 암시를 받아들이지만,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감각과 지각으로 암시를 받아들이게 되며, 어떤 경우, 육감(the sixth sense)으로도 암시를 받아들이게 된다.
<육감이란 분석적인 사고에 의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 정신작용. 이치나 경험으로부터의 지적인 판단을 통한 결론에서가 아닌 직감을 의미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다른 표현.

의식= 현재의식, 일반의식, 표면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하의식. 속마음.

*의식과 무의식(잠재의식).

우리의 의식기능은 비교, 분석, 판단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고, 비판적이고, 걸러내고 선택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만, 계속해서 집중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반면, 우리의 무의식(잠재의식)은 자율신경과 습관, 감정, 운동 등을 관장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잠재의식에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가 숨겨져 있다.

무의식은 의심 없이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의 장점은 한 번 입력이 되면 끝까지 계속 밀고나가는 힘이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도 의식은 무의식(잠재의식)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만큼 무의식(잠재의식)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최면상태에서 무의식(잠재의식)의 여러 가지 원인을 분석하거나 암시를 줌으로서 의지와 이성, 의식의 힘으로 쉽게 바꾸지 못하는 감정과 행동, 습관 등의 여러 가지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의식과 잠재의식의 역할.

사람의 의식의 영역에서는 선택이나 결정 등의 힘을 갖고 있지만 우리의 잠재의식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의식과 잠재의식의 역할은 다르다.
농부와 땅으로 비유할 수 있는데, 농부(의식)는 밭에 씨를 뿌릴 때 우선 무슨 씨를 뿌릴까를 생각한다. 한편, 땅(잠재의식)은 그 씨가 무엇이든 싹이 나게 하기 위해 영양분을 아낌없이 제공해 잘 자라게 해준다. 잘 자라나게 하는 것은 흙의 본성이지만 무엇을 키우는가에 대해서는 흙은 관여하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는다. 이처럼 땅(잠재의식)은 독초를 심으면 독초가 잘 자라게 하고, 약초를 심으면 약초가 잘 자라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우리의 무의식(땅) 속에 부정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면 부정의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게 최선을 다할 것이며, 우리의 무의식(땅) 속에 긍정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면 그 긍정의 열매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 나쁜 씨앗(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이 심어졌다면, 잠재의식 속에 뿌려진 부정적인 경험들이 문제가 되어 현재 지금의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잠재의식은 행동은 하지만 선택하는 자유의식은 없으며, 자신의 목적과 임무만을 알고 충실히 이행할 뿐이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아주 질이 좋은 옥토와도 같다.
그 잠재의식에 독초를 심으면 독초가 자라고, 약초를 심으면 약초가 자란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부정을 심으면 부정이 자라고, 긍정을 심으면 긍정이 자라게 된다.
잠재의식은 아주 질이 좋은 옥토이기 때문에 독초든 약초든 가리지 않고 어떤 것을 심어도 잘 자라랄 수 있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자신의 잠재의식(땅) 속에 부정의 나무(부정적 경험)가 심어져 있다면 부정의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 자신을 힘들고 병들게 만들 것이며, 자신의 잠재의식(땅) 속에 긍정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면 그 긍정의 열매(긍정적 경험)가 무럭무럭 자라 항상 자신을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우울한 마음에 빠져버린 사람은 스스로를 “나는 우울증에 걸렸기 때문에 우울해야 하고, 그것으로 벗어나야 한다.”고 하면서 더욱 자신을 그 우울이라는 최면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자신이 빠져있는 고통과 스스로 놓지 못하는 우울의 허상을 깨뜨려야 한다.


*마음의 세계.

우리는 그것을 “잠재의식(무의식) 또는 속마음”이라 부른다.
최면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의 내부구조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장애나, 고통은 속마음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우리의 마음은 “표층의 마음인 의식“과 ”심층의 마음인 잠재의식“으로 구분되어 있다. 심층의 마음은 무의식적 마음, 속(마음)을 의미한다.

서양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이라는 표현을 썼고, 동양신비주의 철학에서는 “마음”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마음 중에서도 아주 깊은 “속(마음)”이라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흔히들 “나도 내 속(마음)을 모르겠다.”는 말로 자신의 무의식을 표현해 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의식”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의식이 없는 상태, 즉 사람이 약물(마취제)로 잠들거나 정신적 또는 육체적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은 “혼수상태”를 뜻하며, 또 다른 하나는 심층의 마음으로 최면에서는 “잠재의식(무의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모르는 사이 다리를 떠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행위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또 다리를 떠는 행동을 주변 사람이 지적하면 잠시 멈추었다가 자신도 모르게 또다시 다리를 떠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무의식적인 행동은 의식적으로 컨트롤(control)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딜레마(dilemma)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최면은 이런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나 행동패턴을 교정할 수 있는 도구이자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의식인 일반의식 상태에서는 잠재의식과의 교류가 어려우나 최면기법을 통해서 잠재의식을 조절하여 부정적인 성격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악습관이나 공포, 불안, 우울, 스트레스 등을 해소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재편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의식”과 “속(마음)”을 알아보고, 만나보는 것이 바로 “최면심리상담”이다.
“최면심리상담”을 통해서 자신을 제어하고, 통제하여 자신의 삶과 자신의 운명까지도 통제하는 자신의 “무의식” “속(마음)“을 만나본다면,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통찰할 수 있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면심리상담”을 통해 “무의식” “속(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던 아픈 경험이나 상처 등 부정적인 정서에서 벗어나 즐겁고 행복한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잠재의식은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과 답을 알고 있다.”



마음의 힘.

*마음의 원리와 효과.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위약 효과)라는 것이 있다.
어떤 약품을 개발했을 때 임상효과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플라시보를 이용한 검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플라시보 효과”란 약효가 전혀 없는 가짜약을 진짜 약으로 가장, 피험자 혹은 환자에게 복용토록 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신체, 생리적 효과를 말한다. 실제로는 화학적, 의학적으로 전혀 효과가 없는 물질인데도, 피험자나 환자가 치료효과가 있는 약물이라고 마음으로 믿는 데서 비롯되는 효과이다.
“플라시보”란 말은 “마음에 들도록 한다.”는 뜻의 라틴어로 가짜약을 의미한다. 심리상태에 영향을 받기 쉬운 질환에서는 이 플라시보를 투여해도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 실험에 의하면 약 30% 이상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플라시보를 당연히 진통제라고 생각하고, 의심 없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복용하였기 때문에 뇌 안의 엔도르핀(endorphin)이라는 물질이 활성화 되면서 진통효과가 일어났음을 명백하게 보여 주었다.
이것은 믿음을 가진 마음이 뇌의 전달 물질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는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누군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나 기대, 예측이 그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즉, 긍정적으로 기대하면 상대방은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면서 기대에 충족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고, 응원하고, 격려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자주 경험할 수 있다.)
믿는 마음, 즉 믿음에 확신을 가진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으며, 이처럼 진심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되면 불가능하다 여겼던 힘든 일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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